‘악바리’ 프로토토 바카라 사이트 김예준 선수 인터뷰
1월 세계타이틀 매치…국내서 18년만
보육시설서 성장…설움 딛고 일어서
지독한 부상…악바리 같은 재활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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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영기 기자] “바디샷을 3번 연속 맞았더니갈비뼈에 금이 간 것 같았어요. 갈비뼈가 유연해지는 듯한, 간에 달라붙은 그 느낌. 더 맞으면 부러지겠다는 걸 토토 바카라 사이트들은 압니다.얼굴을 내줘서라도 경기는 계속 돼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달 복싱 세계 4대 기구 통합 슈퍼밴텀급(55.3kg) 챔피언 이노우에 나오야와 타이틀 매치를 벌인 김예준(34) 선수는 지난 13일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이노우에를 도발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금이 간 갈비뼈를 움켜쥐고서라도 싸울 의지를 다질 만큼 악바리다.
그는 “갈비뼈를 또 때릴 것 같으니깐, 부상을 숨기기 위해서 얼굴을 내밀고 도발했다”고 말했다. 당시 경기 상황을 전하는 그의 왼쪽 눈에는 아직 피멍이 가시지 않았다. 4라운드 갈비뼈를 지키기 위해 내줬던 안면에 맞은 이노우에의 스트레이트 흔적이다.
안면 타격을 허용한 그는 무릎을 꿇었다. 국내 선수가 세계 챔피언에 도전한 18년 만의 도전이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또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악바리 김예준 선수 앞에는 ‘보육원 출신’, ‘지독한 부상과 피말리는 재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그는 쏟아지는 역경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세계 토토 바카라 사이트 향해 꾸준히 스텝을 밟고 있다.
“‘노스페이스 점퍼’가 갖고 싶었다”…외로움을 딛고 일어난 ‘악바리’
김 선수는 보육시설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고학년 형들에게 맞지 않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잘못없이 맞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는 꿋꿋하게 견뎠다. 그의 악바리 근성은 그때부터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는 “고등학생 형들이 시설 내 초등학생 한두명이 잘못해도 약 60명의 전체 인원을 모아놓고 단체 매질을 했다”며 “그때마다 ‘또 시작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세계 챔피언도 흔들지 못하는 그의 강한 내면이 자라나는 시간이었다.
다만 어린 그에게 닥치는 설움은 감당하기 어려웠다.김 씨는 “노스페이스, 나이키, 아디다스 패딩점퍼나 신발, 바람막이, 트랙탑 자켓 등은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못 입었다”라며 “당시에 엄청 유행이었고, 또 비싸지 않았냐. 당시에 입는 친구들 보면 너무 부러웠다”고 말했다.
스무살, 운동선수로는 늦깎이인 나이에 복싱을 시작해 단숨에 주니어 챔피언에 오를 만큼 김예준 선수는 어린 시절부터 운동 재능을 인정받았다.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는 후원단체까지 나타났지만, 그는 거절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축구를 엄청 잘했다”며 “후원단체에서 중학교 축구부를 보내야 한다면서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제안을 잘라 거절했다. 김 씨는 “그럼 특별 대우를 받는다. 그게 참 눈치가 보였다. 싫었다”며 “특별 대우를 받으면 말 못할 어려움이 있다. 당장 내 생활에 지장이 생기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지겨운 가난…큰 돈이 벌고 싶어서 낀 ‘글러브’
2011년 성인이 돼 보육시설을 떠나던 그 해 김예준 선수는 ‘돈을 많이 벌겠다’는 다짐을 했다. 마침 UFC가 막 인기를 얻던 시기였다. 운동에 자신 있던 그는 UFC 선수가 돼 큰 돈을 벌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떼 돈을 벌고 싶었다”며 “보육시설에 있는 동안에는 여건이 안 됐기 떄문에 20살이 되자마자 격투기로 배우자는 계획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보육 시설을 나와 자리 잡은 집 주변에서는 복싱 체육관이 제일 가까웠다”며 “처음 들어가서 ‘선수하려고 왔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복싱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실력을 인정받았다. 김 씨는 “20살 여름에 배우기 시작했는데 8~9개월 후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며“재능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라며 너스레를 피웠다.
복싱을 만난 그는 삶을 새로 바라보게 됐다. 그는 “운동을 시작하면서 청소년기의 설움을 말끔하게 잊었다”며 “지금은 당시 긍정적인 부분을 바라보면서 ‘재밌는 추억’으로 회상한다”고 했다.
프로 무대를 접한 후 담백하고도 우직하게 주먹으로 치고 받는 복싱의 매력에 빠졌다. 그는 “원래는 종합격투기를 배울 생각이었다”면서도 “복싱을 전문적으로 하다보니 매력에 빠져 복싱 선수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프로 무대를 밟은 뒤 3년 안에 챔피언 타이틀을 2개나 거머쥐었다.데뷔 2년 만에는 WBC 유쓰(청소년) 슈퍼밴텀급 챔피언, 이듬해에는 IBF 아시아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에 올랐다.
복싱 글러브를 낀 지 3년 만에 거둔 성과다. 그의 장기인 돌덩이 같은 왼손 훅과 바디훅으로 상대를 깨부수었다. 오른손잡이인 그는 앞에 둔 왼손으로 상대의 턱과 몸통에 꽂아넣는 훅이 일품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설움을 씻어가며 주목받는 토토 바카라 사이트로 성장하는 기쁨도 잠시. 그의 주무기인‘왼손’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지독한 부상, 의사는 은퇴 권유…그는 왼손잡이가 됐다
김예준 선수는 상대에게 팔과 주먹을 직각으로 꽂아넣는 왼손 ‘훅’을 주무기로 사용했다. 충격을 받아내는 팔꿈치가 남아날리 없었다.

김 씨는 “2017년에 팔꿈치 인대 재건 수술을 2번 했다”며 “하루 3시간을 재활하는 데만 썼다. 지겹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2019년 끈질긴 재활을 통해 부상에서 돌아온 그는 새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또 한번 찾아올 절망을 예상하지 못했다.
경기를 앞두고 팔꿈치 인대 부상이 재발했다.그는 “2019년에 복귀를 앞두고 있는데 재발했다”며 “부상을 참고 링에 올랐다. 그 후 3번 정도 부상을 안고 연달아 경기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부상의 정도는 나날이 심각해졌다. 결국 어깨 위로 팔꿈치를 올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씻을 때조차 왼팔을 쓸 수 없었다.
그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며 “왼손을 일상생활에서도 쓸 수 없는 지경으로 상태가 안좋아졌다”고 말했다.

김 씨는 병원을 다시 찾았다.왼팔을 본 의사는 은퇴를 권유했다.그는 “야구 선수 전문 병원이었는데, 당시에 의사가 ‘야구 선수는 이 정도면 공을 아예 못 던진다’고 얘기했다”며 “당시 의사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이제 선수는 그만두고 체육관을 차려 번듯한 관장이 되는 게 낫지 않겠냐’고 권유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절망적인 부상, 은퇴의 기로에서 그의 악바리 근성은 또 한번 그를 일으켜 세웠다. 오른손잡이(오소독스·orthodox) 토토 바카라 사이트에서 왼손잡이(사우스포·southpaw) 토토 바카라 사이트로 전향했다.
그의 전매특허인 왼손 훅을 내려놓고서라도 도전을 이어가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오른손이 멀쩡하다면 오른손만이라도 좀 잘 써서 시합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졌던 당시를 회상했다.
마음을 다잡던 그에게 또 한번 절망이 찾아왔다. 이번엔 오른쪽 어깨가 문제였다. 그는 “오른쪽 어깨의 인대가 점차 약해지더니 쉽게 탈구되기 시작했다”며 “오른쪽 어꺠마저 수술을 했다. 지금은 최대의 50% 정도 힘으로만 칠 수 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설움과 부상을 딛고, 1년 내 세계 정상 도전장
끝없는 부상과 지난 1월의 패배 후에도 김예준 선수는 작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세계 최강의 벽이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며 “세계 챔피언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한 시간이 짧아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준비했던 기술이 확실하게 들어맞았다”며 “직접 몸을 맞대보니 어떻게 훈련하면 세계의 벽을 넘을 수 있겠다는 감이 확실히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물론 세계 챔피언이 최종 목표지만 다시 기회가 된다면 이노우에랑 다시 한번 링에 오르고 싶다”고 말하며 눈빛을 빛냈다.
세계 챔피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되새기는 그는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스타일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며 “토토 바카라 사이트나라 복싱에서 ‘디펜스’를 잘 하는 선수로, 또 날카로운 잽을 잘 쓸 수 있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강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