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지난 3월 26일 개봉한 영화 ‘승부’가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걸 보면서 1980~90년대 한국 프로 사설 바카라계가 생각났다.
나는 90년대 초중반 사설 바카라담당기자를 한 적이 있어 영화를 보니 자연스레 종로 관철동 시대 한국기원 기사들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승부’는 사설 바카라계의 전설 조훈현(이병헌)과 그의 제자 이창호(유아인)가 사제에서 라이벌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실화 기반의 영화이다.
두 사람은 함께 한국 사설 바카라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지만, 결국 피할 수 없는 승부의 순간을 맞이하며 치열한 대국 속에서 심리전을 펼친다.
냉정하고 비정하기까지 한 승부의 세계에 사는 기사들은 프로사설 바카라계 메인스트림인 조훈현-이창호간의 대결 뿐만 아니라, 한국기원 주변 종로 소재 여관에서 방내기를 하는 사설 바카라 강자들의 이야기가 무협지처럼 돌아다니던 때다.
▶1980~90년대 아날로그 사설 바카라문화
1980∙90년대 한국기원과 프로기사들의 문화를 한마디로 말하면 아날로그 문화다. 당시 기자들은 대국이 열리면 기보와 함께 결과를 팩스로 받아보던 시절이었다. 한국기원에 가면 상임 이사 김인 9단과 한국기원 사무총장인 정동식 사범에게 조심스럽게 취재하던 기억도 난다.
영화 ‘승부’는 움직임이 별로 없는 사설 바카라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용기 자체를 칭찬해줄만하다. 동적이고 외면적인 스포츠와 달리 정적이고 내면적인 사설 바카라의 모습을 담는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 영화에서는 배우의 표정이 큰 역할을 한다. 그 속에 80, 90년대 아날로그 사설 바카라문화를 자연스럽게 잘 담아냈다. 또한 사설 바카라을 잘 모르는 사람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날로그 사설 바카라은 사람을 직접 마주 보면서 직업적인 일을 하는 문화다. ‘문자’와 ‘톡’으로 소식을 알리는 디지털 문화와는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기력 연마는 물론이고 선배로부터 프로기사의 예의범절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당시는 내제자(內弟子) 문화가 있었다. 스승의 집에서 기거하며 사설 바카라을 배우는 제자를 말한다. 원래 일본의 초절정 고수가 집안에 도장(道場)을 두고 제자를 양성하던 제도였다. 70, 80년대만 해도 사설 바카라은 한국보다 일본의 기사층이 훨씬 두텁고 발달돼 있었다. 가능성을 보이는 한국기사들은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조남철 9단과 김인 9단은 기타니 미노루의 내제자가 됐고, 조훈현 국수는 세고에 겐사쿠의 내제자가 됐다. 이후 조훈현 국수는 귀국해서 9살의 이창호를 수양아들 같은 ‘내제자’로 받아들였다. 이창호에게 조훈현은 ‘수양아버지’였고, 조훈현의 아내인 정미화 씨는 ‘작은 엄마’였다.
세고에 옹은 조훈현 국수의 사설 바카라을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지 않고 방임하는 스타일이었다. 조 국수는 세고에 옹이 “사람이 되어야 사설 바카라도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훗날 조훈현 국수가 이창호를 지도할 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조훈현 9단은 기풍(棋風, 사설 바카라 두는 스타일)이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이창호와 초반에는 신경전과 갈등은 있었지만 “너의 색깔을 찾아라”는 말로 최종 솔루션을 하게 된 것은 영화 ‘승부’에 잘 나타나 있다.
이로써 스승과 제자 둘 다 각각의 스타일로 승자가 된 셈이다. 그러니 영화 ‘승부’에서도 ‘사설 바카라황제’ 조훈현도 위대하며, 그의 제자인 ‘돌부처’ 이창호도 대단하다는 내용이다. 둘 중 어느 한쪽으로만 기울어지지는 않는다.

▶사설 바카라 가르침의 내제자(內弟子) 문화
조훈현 9단은 최근 인터뷰에서 “제가 스승님에게 배운 게 있다. 그걸 그대로 이창호에게 물려준 건데. 스승은 가르치는 게 아니고, 그냥 이끌어주는 거다. 그 길로 가게끔. 영화를 보니까 막 이제 야단도 치고 하는데, 그건 영화니까 그렇고 실제로는 아니거든요. 저는 그게 아니고. 이창호가 알아서 저렇게 컸고 알아서 잘한 거지, 제가 저렇게 잘 가르친 건 아니다”고 겸손을 표하기도 했다.
필자는 90년대초 취재를 위해 권갑용 사범의 반포 1단지 주공아파트 단지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집에서는 초중고생 나이의 아이들이 여러 명 기거하며 권 사범에게 사설 바카라을 배우고 있었다. 당시는 몰랐지만, 지금은 은퇴한 83년생 ‘비금도’ 천재기사 이세돌 아이도 있었던 것 같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권갑용 사범은 일찌감치 토너먼트 프로보다는 티칭 프로의 길을 택해 1982년 권갑용 사설 바카라학원(사설 바카라도장)을 설립한 후 평생을 후학 양성에 힘썼다. 권 사범은 승부사보다는 지도자의 길을 밟아 한국사설 바카라의 저변을 크게 넓힌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권 사범은 제자들 중 1989년 첫 프로 기사가 된 박승문을 배출했고, 이세돌, 원성진, 최철한, 백홍석, 강동윤, 김지석, 박정환, 윤영선, 김성진 등 무려 50명이 넘는 프로기사를 양성했다. 이들의 단수를 모두 합치면 250단이 넘는다. 이들에게 한솥밥을 먹게하며 편의를 제공했던 권 사범의 부인인 박옥주 씨의 헌신은 한마디로 대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좁은 아파트에서 여러 명의 아이들과 함께 먹고 자는 생활을 한다는 자체가 지금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조-이 사제대결 개막, 그리고 스승의 모든 타이틀을 접수한 이창호 9단
조훈현은 1974년 최고위전 획득으로 시작해 90년대 초까지 17~18년을 일인자로 군림했다. 그는 1980년 7월 2일에 이르러서는 서봉수의 명인(名人) 타이틀까지 빼앗으며 국내 타이틀 전관왕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창호가 타이틀전을 본격적으로 따내기 전인 80년대 중후반까지 한국사설 바카라은 조훈현 9단과 서봉수 9단의 대결이었다. 그 밑에 ‘도전 5강’(서능욱, 강훈, 김수장, 장수영, 백성호)이 있었지만, 조-서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조훈현이 8~9개, 서봉수가 1~2개 정도의 기전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던 일방적인 구조였다. 그럼에도 ‘된장사설 바카라’의 서봉수도 끈질기게 조훈현 국수를 물고 늘어졌다. 그러니까 80년대는 1인자 조훈현, 2인자 서봉수였다.
이 때는 일본과 중국이 사설 바카라 강국으로 버티고 있었다. 일본은 기타니와 세고에와 같은 레전드 스승과 ‘우주류’ 사설 바카라 창시자인 다케미야 9단, ‘지하철 사설 바카라’의 대가 고바야시 9단이 있었다. 중국에는 섭위평 9단이 최강자였다. 중국 이야기는 ‘승부’ 앞부분에 잠깐 소개된다.
당시 중국은 한동안 사설 바카라을 홀대하다가 두뇌스포츠로 받아들이며 정책을 바꿔 프로기사들을 태릉선수촌 같은 곳에서 훈련을 시킨다는 말도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에도 나왔듯이 조훈현은 1989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기전의 사실상 효시인 제1회 응창기배 세계사설 바카라대회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중국의 섭위평 9단을 꺾고 개선장군이 된다.


이후부터는 ‘사설 바카라황제’ 조훈현 국수와 초스피드로 성장한 제자 이창호 9단, 유창혁 9단의 등장으로 한국이 한중일 사설 바카라삼국지의 주도권을 잡아나갈 수 있었다.
1975년 전주 출생인 이창호는 84년 9살 때 조훈현의 내제자로 들어간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1980년대 후반부터는 사제대결이 시작됐다. 이창호는 야금야금 조훈현이 가진 타이틀을 가져오더니 1994년 정도가 되면 이미 조훈현의 모든 타이틀을 접수했다.
스승 조훈현이 9단이 된 1982년에 사설 바카라을 배우기 시작해 불과 8년후인 1990년에 스승을 꺾었다. 적어도 20~30년후에야 올 미래라고 생각하고 집안으로 받아들인 제자가 얼마안 있어 스승을 꺾어버렸다.
천하의 조훈현 국수가 무관이라니. 이창호는 1992년 국제기전인 동양증권배에서 우승해 최연소 세계챔피언이 됐고, 1996년에는 제9회 후지쓰배세계사설 바카라선수권대회마저 우승했다.

한 집에서 이 두 사람과 함께 살아가던 조훈현 국수의 아내인 정미화 씨(문정희)도 대단한 사람이다. 항상 두 사람을 차에 태워 대국장까지 보내준다. 조제비(조훈현)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는 말이 나올만 했다. 남편의 상금을 하나씩 제자가 가져갈 때와, 특히 이창호가 남편의 이름 뒤에 붙어있는 ‘국수’(國手)를 가져갈 때는 ‘이창호의 작은 엄마’로서 얼마나 힘든 마음이었을까?
두 사람의 희로애락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정미화를 연기한 문정희는 드라마틱하고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조훈현 국수라 해도 어릴 적부터 가르친 이창호와의 대결에서 계속 패하면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평정심을 잃었다. 하지만 조 국수는 절치부심, 승부사 기질로 다시 한번 무관을 탈출하며 사설 바카라의 정상에 도전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극적인 장면이다.
이 과정에서 체인스모커였던 조훈현 국수는 오랜 기간 애용하던 ‘장미’ 담배를 끊고 ‘카라멜’로 바꾼다. 대국때마다 60~80개(3~4갑)의 꽁초가 재털이에 수북히 쌓였다. 요즘 같으면 간접흡연 피해 문제를 제기할만하다. 조 국수는 한때 연속 패배를 체력부족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와기(臥棋, 누워서 사설 바카라을 둠)로 두기도 했다.

조훈현 스승과 이창호 제자는 ‘기풍’이 서로 너무 다른 것도 흥미롭다. 조훈현은 날카로움, 공격사설 바카라, 쾌속행마형이라 ‘제비’라는 별명이 붙었다. 반면 이창호는 느리고 두터움, 기다림의 사설 바카라, 내면사설 바카라, 계산의 신, 끝내기의 대가다. 그래서 강태공, 능구렁이, 애늙은이, 돌부처라는 다양한 별칭이 붙었다. 이창호는 끝내기만으로도 몇집을 얻어낸다.
필자는 이창호의 국내외 대국이 열리면, 검토실에 조용하게 와있던 이창호의 부친인 이재룡 씨와도 대화를 나누곤 했다. 전주에서 시계포를 한다는 이창호 부친은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았다. 이창호가 우승하면 인터뷰를 해야하는 데, 말을 잘 하지 않아 애태웠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검토실의 이재룡 씨에게 달려가 물어보면, 아버지는 사설 바카라을 아예 모른다고 했다. 이창호는 어릴 때 할아버지로부터 처음 사설 바카라을 배웠고, 전영선 사범에게 사사했다. 전영선 사범은 이창호 어린이를 조훈현 국수에게 추천해주었다.
아창호의 아버지 이재룡 씨와, 앞에서 말한 권갑룡 사범, 그리고 중요한 사설 바카라대회 때마다 KBS 등 TV에서 사설 바카라해설을 하던 신사 노영하 사범, 너털웃음을 지으며 유창한 언변과 재치있고 구수한 해설이 인상적인 김수영 사범은 안타깝게도 모두 고인이 되어 기억으로 추억한다. 모두 사설 바카라계 발전에 기여한 분들이다. 잠실에서 사설 바카라교실을 열고, ‘EBS사설 바카라교실’을 24년이나 진행한 양상국 9단과 요즘도 여전히 필력을 휘두르는 월간사설 바카라 정용진 편집장에게도 당시 필자는 많은 취재 도움을 받았다.
▶영화 ‘승부’의 좋은 연기, 이병헌과 유아인
‘승부’에서는 사설 바카라계의 리빙 레전드 조훈현과 거대한 벽 같은 스승 조훈현을 넘어서기 위해 뚝심을 발휘하는 제자 이창호로 분한 배우들의 연기도 볼만하다.
이병헌의 예고편 모습을 본 조훈현 국수가 ‘나인 줄 알았다’라고 했다고 할 정도로 이병헌은 연구를 많이 했다. 대국을 하는 유아인의 옆모습은 순간적으로 이창호 9단과 너무 닮아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은 연기를 잘했다. 결코 쉬운 연기가 아니다. 정적인 흐름속에서 감정을 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아인이 과묵한 이창호를 연기한 것도 다행이다. 마약 투약 혐의로 인해 자숙중인 유아인이 말 많은 배역을 맡는 것보다, 무표정의 이창호의 역할을 맡는 게 더 잘 어울렸다.
그러니 배우 유아인과 이병헌이 보이지 않았고 캐릭터인 조훈현과 이창호가 보였다.

배우 조우진이 연기한 남기철 기사는 서봉수 명인, 서능욱, 김수장, 유창혁 등 몇명의 기사가 떠올랐지만, 김형주 감독은 “남기철 사범은 여러 기사들을 조합해 창조한 인물”이라고 했다.
남기철 사범은 조훈현이나 이창호와 대국을 하면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방향성을 제시하며 조언을 하는 캐릭터라 아마 조훈현과 이창호와 자주 대국하면서 조언자 역할도 할 수 있었던 서봉수 명인이 더 가깝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영화 ‘승부’는 기본 사설 바카라 용어 설명만 있고, 대국중 중요한 국면에서의 형세분석 등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1991년 11월 25일 MBC에서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 ‘인간시대 - 승부’를 보고 영화를 보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