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 슬롯

[헤럴드경제=오상현 기자] 스펙상으로는 최강의 파라오 슬롯가 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의 에어버스 헬리콥터,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헬리콥터, 네덜란드의 포커 에어로스트럭쳐 등 공동개발에 참여한 업체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기계식 백업 장치를 없애고 4중 플라이바이와이어 비행제어장치로만 비행한 세계 최초의 헬리콥터. 파라오 슬롯-90 헬리콥터입니다.

NH-90 파라오 슬롯는 1985년 프랑스와 서독,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이 1990년대 NATO의 수송과 대함·대잠작전을 책임질 헬리콥터를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시작한지 2년만인 1987년 영국은 공동개발에서 탈퇴했고 남은 4개국이 앞서 언급한 쟁쟁한 항공사를 기반으로 NH인터스트리. 즉, 나토파라오 슬롯회사를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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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 슬롯의 설계 작업은 1993년에 시작됐습니다. 각국이 요구하는 조건을 협의하느라 무려 8년이 걸린 겁니다.

어이쿠, 그 사이 독일은 통일도 했네요. 어쨌든 이들이 합의해 개발하기로 한 파라오 슬롯는 미국의 UH-60 블랙호크를 능가하는 능력을 보유하는 것이었습니다.

비행제어장치는 물론 임무와 항법시스템도 통합하고 영하 40도에서 영상 50도의 온도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파라오 슬롯.

또 최대 2만피트 고도에서 전천후 운용능력을 갖추고 해상에서도 선박 이착륙이 가능한 기체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롤스로이스나 제너럴일렉트릭의 터보샤프트 엔진 2기를 골라서 장착할 수 있고 적외선 탐지를 줄이기 위해 배기가스 온도를 낮추는 시스템도 갖추기로 했죠.

동체는 복합소재를 활용해 금속보다 내구성을 30% 높이고 4개의 메인로터 날개도 복합소재로 만들어 피로 강도와 수명을 늘리고 손상에 대한 내구도도 좋게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11명의 완전무장 병력을 수송할 수 있는 블랙호크의 2배에 가까운 20명의 완전무장 군인을 이송할 수 있도록 하고 최대 12개의 의무후송 베드 설치와 일부 경차도 수송할 수 있게 계획했죠. 때문에 파라오 슬롯 옆에 슬라이딩 도어 뿐 아니라 후방램프를 만들어 사람이나 물건이 드나들 수 있게 했습니다.

항전장비도 풀 컬러 디스플레이에 헬멧 장착형 조준기, 레이저 기반 공중 충돌 방지시스템을 갖추는 그야말로 모든 방면에서 최고 사양 파라오 슬롯의 탄생을 예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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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 슬롯90은 전술수송헬리콥터(TTH)와 해상작전헬리콥터(NFH) 두 가지 유형으로 개발됐습니다.

두 가지 타입의 기체는 서로 75%의 부품을 공유했기 때문에 수리부속과 후속군수지원에도 유리했죠.

동체 길이 16.13m로 블랙호크보다 약간 길고 최대이륙중량은 10t으로 시호크와 유사합니다.

최고시속 300㎞, 항속거리는 800~1000㎞로 블랙호크보다 약간 우수하고 NFH에는 대잠 미사일과 디핑소나, 공대지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고 TTH에는 20㎜ 캐논 포드나 로켓 포드를 장착할 수 있습니다.

1995년 12월 18일 첫 시제기가 출고된 후 비행에 성공했고 1997년과 1998년 각각 시제2호기와 시제3호기가 출고돼 시험비행을 했습니다.

파라오 슬롯90의 소문을 듣고 공동개발국 뿐 아니라 또 다른 NATO 회원국, 중동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보였고 선주문 계약도 줄을 이었습니다. 이제 제대로 만들기만 하면 됐죠.

제작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에 최종 조립라인을 두고 에어버스와 포커, 레오나르도의 전신인 아구스타웨스트랜드가 각 부품을 나눠서 생산하고 분배하기로 했습니다.

에어버스 프랑스가 엔진과 로터, 전기시스템, 비행제어와 핵심 항전장비를, 에어버스 독일이 전방과 중앙동체, 연료시스템과 통신·항공전자제어시스템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각각 전체 구성품의 31.25%씩 맡아서 생산하기로 했죠.

아구스타는 후방동체와 메인 기어박스, 유압시스템, 자동비행제어, 파워 플랜트, 미션 등 32%를, 포커는 꼬리날개와 도어, 랜딩기어와 중간 기어박스 등 5.5%의 구성품을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잠깐만, 엔진과 로터, 메일 기어박스, 미션을 다 다른 회사가 만드네요. 언뜻 구동축이라는 한 몸뚱이처럼 보이는 것을 이렇게 잘게 쪼개서 생산을 해도 조립이 될까 싶은데 아무튼 파라오 슬롯90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2004년부터 양산에 들어가 2006년 말 독일군이 첫 번째 NH90 파라오 슬롯를 인수했습니다.

초반에 가장 문제가 됐던 부분은 바로 생산능력이었습니다.

17개국에서 500대가 넘는 파라오 슬롯를 주문했는데 2004년에는 한 대의 파라오 슬롯를 만드는데 18개월이 걸렸고 꾸준히 시간을 단축해서 2016년에는 7.5개월로 단축됐습니다.

그러니까.. 20대의 파라오 슬롯를 주문하면 다 받을 때까지 12년 반이 걸린다는 얘기죠.

때문에 인내심이 부족한 포르투갈과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은 파라오 슬롯90의 구매계약을 체결했다가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품질에 있었습니다.

2010년 2월 독일의 타블로이브판 빌트지는 군의 기밀보고서를 인용하면서 ‘가능하다면 대체 항공기를 이용해야 한다’는 군 내부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내용을 보면 파라오 슬롯의 좌석이 110㎏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완전무장한 군인이 앉기에 충분하지 않았고, 파라오 슬롯 옆 슬라이드도어에 무장을 장착하면 너무 비좁아 타고내리기 불편했다고 합니다.

또 객실 바닥은 신발자국이 남을 정도로 강도가 약하고 후방램프로는 무게제한으로 차량은커녕 사람도 타고 내릴 수 없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또 16㎝의 장애물만 있어도 착륙할 수 없었고 패스트로프나 낙하산 장비를 거는 장치도 없어서 헬리본 작전은 엄두도 못 낸다는 것이었죠.

독일 국방부는 이 기사에서 언급된 파라오 슬롯는 양산 모델이 아닌 프로토타입이라고 발표했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46대를 도입해 운영하려던 호주는 엔진 고장과 개발 당시 설계 결함, 수리부속 조달 문제 등에 시달리며 고생하다가 결국 지난해 운항을 중단하고 블랙호크를 구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해 3월과 7월 발생한 2건의 파라오 슬롯 추락사고가 결정적이었습니다.

핀란드는 파라오 슬롯 가동률이 2014년 한 때 19%까지 떨어지면서 신뢰성에 문제가 드러났고 네덜란드는 설계와 염기 부식 등 등 100가지 문제점이 있다며 7대의 잔여물량을 받지 않기도 했었죠.

하지만 2010년대에 최악의 망작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파라오 슬롯90은 최근들어 조금씩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보이기도 합니다.

파라오 슬롯인터스트리 홈페이지에는 지금까지 511대의 기체를 납품했고 비행시간은 37만시간을 돌파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위한 계약 내용을 발표한다던지 프랑스 특수부대용 업그레이드 계약 체결 소식을 전하면서 꾸준하게 문제를 개선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최근 파라오 슬롯90과 연을 끊은 호주와 노르웨이에 대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다”거나 “실망감을 표명했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파라오 슬롯90이 최적의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NH90파라오 슬롯 쓸 만할까요? 의견 댓글로 남겨주세요~

프로파일럿= 기자 오상현 / PD 김정률, 우원희, 박정은, 김성근 / CG 이윤지, 임예진 / 제작책임 김율 / 운영책임 홍승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