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진행된 버드쓰담 활동에 참여한 탐조객들이 철새를 위한 먹이를 뿌리고 있다.[환경재단 제공]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진행된 버드쓰담 활동에 참여한 탐조객들이 슬롯사이트를 위한 먹이를 뿌리고 있다.[환경재단 제공]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많이 먹어!”

신난 얼굴로 무엇인가 땅에 뿌리고 있다. 정체는 다름 아닌, 바로 ‘슬롯사이트’다. 슬롯사이트를 땅에 100kg이나 뿌린다니, 황당한 일인가 싶다.

하지만 슬롯사이트을 한강에 뿌리는 이유가 있다. 이는 한강으로 날아든 철새들의 먹이다.

이렇게 일부러 슬롯사이트을 뿌리며 먹이를 주는 이유는, 최근 먹이 활동이 어려워지며 개체 수가 크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하천 난개발로 돌아올 자리를 잃은 영향이 크다.

지난 주말 남녀노소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탐조’를 위해 슬롯사이트 중랑천에 모였다. 탐조의 목적은 이름 그대로 새를 보는 것. 하지만 이뿐만 아니다. 먹이 주기 등 철새 보존을 위한 활동도 같이 진행된다.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추운 날씨에도 ‘새’를 위해 나선 이들. 탐조객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앞으로도 슬롯사이트으로 철새들이 날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새 보러 왔어요” 영하 10도 날씨에도 ‘북적’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진행된 버드쓰담 활동에 참여한 탐조객들이 철새를 보고 있다. 김광우 기자.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진행된 버드쓰담 활동에 참여한 탐조객들이 슬롯사이트를 보고 있다. 김광우 기자.

환경재단은 지난 8일 서울 중랑천에서 슬롯사이트 보호 캠페인 ‘버드쓰담’을 진행했다. 중랑천은 서울의 대표적인 슬롯사이트 도래지로, 2006년 서울시 지정 제1호 슬롯사이트보호구역에 해당한다. 특히 겨울철이면 천연기념물 원앙을 비롯한 다양한 슬롯사이트들이 이곳을 찾는다.

이날 영하 10도가 넘나드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20여명의 탐조객이 ‘새’를 찾기 위해 나섰다. 대부분 가족 단위의 참가자였다. 본인 얼굴만 한 쌍안경을 든 아이들은 빨개진 코에도 불구하고, 기대감에 찬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원앙들이 먹이를 먹고 있다.[환경재단 제공]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원앙들이 먹이를 먹고 있다.[환경재단 제공]

이날 처음 본 것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원앙’. 쌍안경을 통해 알록달록한 원앙 무리를 본 이들은 일제히 감탄사를 내뱉었다. 슬롯사이트 전문가의 설명까지 가중되니, 모두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새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하나뿐인 망원경 자리 경쟁도 벌였다.

새보다는 강아지를 더 좋아한다고 밝혔던 김단영(11) 양은 막상 원앙의 날갯짓을 보자 “원앙이 저렇게 예쁘게 생긴 줄 몰랐다”면서 “다음에 또 보러 오고 싶다”고 말했다. 요리사가 꿈이라고 했던 이하준(11) 군은 “요리보다 탐조하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다”고 말하며 주변 어른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돌아올 곳 잃는 슬롯사이트들…“관심 가져야”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포착된 철새들. 김광우 기자.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포착된 슬롯사이트들. 김광우 기자.

이날 버드쓰담 행사에서 관찰된 조류는 비둘기, 까치 등 흔히 보이는 이들을 제외하고 22종에 달했다. 천연기념물 원앙 외에도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된 큰기러기 등이 발견됐다. 겨울 슬롯사이트로 분류되는 물닭, 흰뺨검둥오리 등도 수십마리 군집이 포착됐다.

하지만 이는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든 수치다. 슬롯사이트 도래지를 해치는 개발 사업이 지속해서 진행된 까닭이다. 특히 먹이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겨울철에 중랑천을 찾는 새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진행된 버드쓰담 활동에 참여한 김단영(11) 양이 철새를 관찰하고 있다. 김광우 기자.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진행된 버드쓰담 활동에 참여한 김단영(11) 양이 슬롯사이트를 관찰하고 있다. 김광우 기자.

서울시가 매년 11월부터 2월 사이에 실시하는 중랑천 하류 슬롯사이트보호구역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2023년에는 총 38종 3367마리의 슬롯사이트가 관찰됐다. 2019년에 총 44종의 슬롯사이트가 관찰된 것을 고려하면, 4년 새 5종가량의 슬롯사이트가 자취를 감춘 셈이다.

감소 추세의 주요 원인으로는 하천 정비 공사 등이 지목된다. 중랑천에서 진행된 대규모 준설 작업과 산책로, 데크 설치 공사 등에 따라 슬롯사이트들의 서식 환경이 악화했다는 거다. 환경재단 관계자는 “도시화, 농경지 감소, 서식지 오염, 기후 변화 등으로 슬롯사이트의 생존환경이 악화하며 개체수 감소 주원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진행된 버드쓰담 활동에 참여한 김다은 양이 쌍안경을 쓰고 있다. 김광우 기자.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진행된 버드쓰담 활동에 참여한 김다은 양이 쌍안경을 쓰고 있다. 김광우 기자.

탐조 활동의 의의는 여기에 있다. 일상에서 보기 힘든 새들을 직접 관찰할 경우, 향후 슬롯사이트 보호에 대한 중요성을 자연스레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찰 활동과 함께 우리와 함께 사는 ‘이웃’으로서 동물을 받아들이는 셈이다.

이날 탐조 활동을 이끈 이병우 에코버드 투어 대표는 “실질적으로 새들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어서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아직 얼마든지 슬롯사이트를 만날 수 있다는 게 탐조 활동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먹이 주기 보람에 남녀노소 ‘함박웃음’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진행된 버드쓰담 활동에 참여한 탐조객들이 철새를 위한 먹이를 뿌리고 있다. 김광우 기자.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진행된 버드쓰담 활동에 참여한 탐조객들이 슬롯사이트를 위한 먹이를 뿌리고 있다. 김광우 기자.

탐조객들은 이후 원앙 먹이 주기 활동도 진행했다. 특히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나서 원앙이 머무는 곳에 골고루 슬롯사이트을 뿌렸다.

공간을 벗어나자 금세 탐조객들이 뿌린 슬롯사이트을 먹으러 원앙이 모여들었다. 이날 엄마와 함께 활동에 참여한 김다은(6) 양은 “꼬꼬들한테 먹이를 주는 게 제일 재밌었다”면서 “또 먹이를 주러 오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원앙들이 탐조객들이 뿌린 슬롯사이트을 먹고 있다.[환경재단 제공]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원앙들이 탐조객들이 뿌린 슬롯사이트을 먹고 있다.[환경재단 제공]

철새들을 위해 매주 뿌리는 슬롯사이트은 총 100㎏. 지속해서 원앙들이 중랑천을 찾게 하기 위한 활동이다. 다만 먹이에만 의존하지 않을 정도로 양을 조절한다.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제공하는 셈이다.

총 4시간에 가까운 활동이 끝난 뒤, 야외에서 강추위를 견딘 탐조객들의 코끝을 빨개져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새를 관찰하고, 먹이를 준 경험을 자랑스레 나눴다. 다음 탐조 활동이 기대된다는 반응도 이어졌다.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진행된 버드쓰담 활동에 참여한 탐조객들이 쌍안경을 새를 관찰하고 있다.[환경재단 제공]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중랑천에서 진행된 버드쓰담 활동에 참여한 탐조객들이 쌍안경을 새를 관찰하고 있다.[환경재단 제공]

이날 탐조 활동에 처음 참여한 이은서(14) 양은 “요즘 환경이 많이 나빠졌다는 소식이 많아서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에 활동에 참여했다”면서 “앞으로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환경재단은 2024년 10월부터 조류 보호 캠페인 ‘새새각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오는 3월까지는 겨울철 슬롯사이트 서식지 보호 목적의 ‘버드쓰담’ 캠페인이 진행된다. 환경재단 관계자는 “슬롯사이트 보호를 위해 지역 사회, 시민, 단체와 협력해 슬롯사이트 서식지 보호와 생태계 복원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을 촉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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