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넘어 미국 영토확장’ 창업 10년 만에 자산 66조원… 테무 모회사 핀둬둬 창립자 우리 카지노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더 우리 카지노]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매일 뉴스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인데...아는 게 별로 없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더 우리 카지노]를 챙겨 봐주세요.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성공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우리 카지노 PDD홀딩스(핀둬둬) 창업자 [바이두]
우리 카지노 PDD홀딩스(핀둬둬) 창업자 [바이두]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항저우 외국어학교(HFLS)에 안간다고 하니 교장 선생님이 직접 설득하셨어요. 돌이켜보면 제가 결국 그 학교를 가길 참 잘했죠.”

‘평범한 학생의 인생을 수학 올림피아드가 바꿨다.’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테무’ 모회사로 유명한 핀둬둬 창업자 우리 카지노의 삶을 이같이 표현했다.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소시민의 자녀였던 우리 카지노. 그는 초등학생 시절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초엘리트 코스’를 밟게 된다.

대학졸업 후 그는 세계 최대 검색엔진 기업인 구글에 입사했다. 구글 퇴사 후 중국으로 넘어와서는 만드는 전자상거래 회사마다 대박을 터트리는 ‘미다스의 손’이 된다.

그러다 미국 이커머스 시장을 공습한 ‘우리 카지노’가 초대박을 치면서 중국판 일론 머스크로 등극한다.지난해 블룸버그통신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우리 카지노은 486억달러(약 66조4000억원)의 재산을 보유해 14억 중국인 중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 됐다.인생에 실패란 없는 무패신화를 달성한 우리 카지노에게 어떤 특별함이 있었을까.

평범한 학생 → 중국 초엘리트로 신분상승

우리 카지노 PDD홀딩스(핀둬둬) 창업자.  [게티이미지]
우리 카지노 PDD홀딩스(핀둬둬) 창업자. [게티이미지]

우리 카지노은 중국 내에서 자수성가·신분상승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그의 출생은 평범했기 때문이다. 황은 1980년 중국 저장성 황저우 변두리 지역 공장 노동자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1980년대 당시 중국 황저우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모이던 도시로, 황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집안의 자녀였다.

평범했던 그를 바꾼 건 수학 올림피아드였다. 과거 자신의 블로그에도 황은 자신의 인생을 크게 바꾼 사건을 초등학교 수학 올림피아드로 꼽았다.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상을 받은 후 선생님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황에게 중국 저장성 명문학교인 HFLS에 입학 시험을 보라고 권유했다.

황은 “HFLS는 외국어 학교라 생각했기 때문에 가고 싶지 않았다”며 “수학, 물리학, 화학이 강한 학교에 가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결국 교장선생님까지 나서 HFLS에 입학을 권유했고, 황은 그렇게 명문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HFLS는 황의 인생궤도를 바꿔놨다. HFLS에는 부유층 자제들이 많이 다녔다. 당시 황저우 시장 딸이 그의 반 친구일 정도로 공산당 고위층 자제들이 많이 다녔다. 학교에 다니면서 황은 중국 상류층과 교류하는 데 자신감을 얻게 된다. 황은 자신의 위챗 계정에 올린 게시물에서 HFLS에서 “다른 학교에 비해 서양 문화와 영향력에 대해 훨씬 더 일찍, 더 깊고, 더 많이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현재도 HFLS는 매년 졸업생의 80%가 중국 최고 명문대인 칭화대, 베이징대를 비롯해 해외 유수 대학인 하버드대, 예일대, 케임브리지대 등에 입학할 정도로 엘리트학교로 꼽힌다.

황의 ‘초엘리트 코스’는 HFLS를 발판으로 더욱 가속페달을 밟게 된다.컴퓨터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18살에 중국 명문대인 저장대에 입학했다. 카드결제시스템 ‘베리폰’ 창업자 빌 멜튼이 세운 멜튼 재단의 펩로우십 중 한 명으로 선발됐다. 당시 멜튼 재단에 아시아인, 그 중에서도 중국인이 펠로우로 뽑히는 건 이례적이었다.

“엄마 월급보다 많은 인턴 월급” 미국행 결심

2016년  구글 재직시절 우리 카지노 PDD홀딩스(핀둬둬) 창업자(왼쪽)는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의 회장 겸 CEO과 점심을 가지기도 했다. [레딧]
2016년 구글 재직시절 우리 카지노 PDD홀딩스(핀둬둬) 창업자(왼쪽)는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의 회장 겸 CEO과 점심을 가지기도 했다. [레딧]

나는 운이 좋았다. 닭장에서 날기에 성공한 봉황새였다. 하지만 후회하는 건 있다. 젊음을 즐기지 못했다. 나는 목표 지향적이었고. 어디서나 1등을 하고 좋은 학생이 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우리 카지노이 과거 작성한 ‘메디엄’ 블로그 글 中

멜튼 재단 펠로우에 선정된 황은 마이크로소프트(MS) 베이징 사무실에서 인턴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MS 인턴 연봉은 6000위안(약 119만원).황은 “인턴 월급이 엄마가 받는 월급보다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황은 MS 인턴을 계기로 미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미국행을 위해 그는 위스콘신대로 컴퓨터 과학 석사에 진학한다. 위스콘신대에서도 그의 능력은 빛을 발한다. 황의 놀라운 실력에 교수는 각종 추천서를 써줬고, 인턴을 했던 MS를 비롯해 오라클, IBM으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는다. 그 중 황에게 가장 유리했던 기업은 MS였다. 그는 과거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MS는 당시 미국 영주권을 받고 싶다면 아마도 가장 좋은 곳이었을 것”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제안을 뿌리치고 갓 상장한 스타트업에 취업하는 도박을 단행한다. 바로 구글이다. 2004년 검색 엔진 회사였던 구글에서 황은 엔지니어로 3년 동안 일하게 된다.황은 “당시 내가 따르던 멘토가 ‘구글이라는 회사를 눈여겨봐라’라고 말했고, 결국 구글을 선택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구글에서 일하면서 황은 막대한 부를 거머쥐게 된다. 3년 만에 구글 주가는 85달러에서 500달러 이상으로 급등했고, 취업 대가로 받은 스톡옵션(회사가 임직원에게 자사 주식을 미리 정한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제도)으로 큰돈을 벌었다. 황은 구글 시절에 대해 “영업이익과 동료가 급격히 늘었고 은행 잔액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황은 인터넷 스타트업에 합류하는 불확실성을 선택했고 도박이 결실을 보았다”며 “그가 받은 스톡옵션은 경제적 자유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언뜻 보기에 이 모든 과정이 순탄해 보이지만 황은 그 누구보다 치열했다.그는 “운이 좋았다”며 “닭장에서 날기에 성공한 봉황새”라고 자신을 비유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후회가 있다면 “젊음을 즐기지 못했다”고 블로그를 통해 회상했다. 그는 “나는 목표 지향적이었고. 어디서나 1등을 하고 좋은 학생이 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고 했다. 그는 “때로는 반항적이고, 장난기 많은 모습을 보였으면 어땠을까 싶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창업계 ‘마다스의 손’, 33살에 은퇴하다

우리 카지노 PDD홀딩스(핀둬둬) 창업자가 2007년 전자상거래 회사 ‘오쿠’를 세웠을 당시 중국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레딧]
우리 카지노 PDD홀딩스(핀둬둬) 창업자가 2007년 전자상거래 회사 ‘오쿠’를 세웠을 당시 중국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레딧]

그에게 어려운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6년 구글이 황을 중국으로 파견하면서 중국과 미국을 오가는 강도 높은 업무에 결국 퇴사를 결심하게 된다. 당시 구글은 중국 검샌엔진 회사인 바이두와 경쟁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서명이 필요한 사소한 문제까지 중국과 미국을 오가야 했다”며 “왔다갔다 하는 데 지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황은 “구글 검색 결과에 표시된 한자의 색상과 글꼴 크기를 변경하기 위해서도 미국 본사와 중국을 오가야 했다”고 힘든 경험을 말하기도 했다.

중국 구글이 중국 인재를 유치하지 못하는 상황도 답답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중국 현지 기업보다 세계적인 기업이 전투력을 가진 인재를 확보하기 훨씬 더 어렵다”고 자신의 블로그에 적었다.

황은 구글 퇴사를 계기로 아예 중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황은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전자상거래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전자상거래 회사 ‘오쿠’를 설립한 그는 3년 뒤 220만달러에 성공적으로 매각을 하게 된다.

황은 곧바로 두 번째 회사인 ‘리큐’를 설립했다. 리큐는 해외 기업이 티몰이나 제이디닷컴(JD.com)과 같은 중국 플랫폼에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회사였다. 전자 상거래 회사를 운영하던 그는 3번째 회사로 웹기반 게임업체인 ‘순멍’을 만들기도 했다.

너무 달려서였을까. 황은 세 회사 모두 성공적으로 운영했으나 건강은 심하게 안좋아졌다.결국 2013년 33살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한다.

그러나 그의 은퇴는 오래가지 못했다. 황은 은퇴한 지 2년 만인 2015년 PDD홀딩스(핀둬둬)를 창업하면서 알리바바와 제이디닷컴이 지배하는 전자상거래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게 된다.

그는 자신의 쇼핑몰 운영 노하우와 게임회사 운영 경험을 살리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믿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는 창업초기 반얀이 이끄는 투자자 그룹으로부터 800만달러를 유치했고, 이듬해에는 약 1억달러를 더 모금했다.

‘핀둬둬’로 화려한 복귀…게임+쇼핑 결합 도전장

2018년 나스닥에 상장된 PDD홀딩스(핀둬둬)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 CNBC 방송에 출연한 우리 카지노 핀둬둬 창업자. [CNBC 방송화면]
2018년 나스닥에 상장된 PDD홀딩스(핀둬둬)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 CNBC 방송에 출연한 우리 카지노 핀둬둬 창업자. [CNBC 방송화면]

“코스트코+디즈니월드=우리 카지노”

2018년 기업공개(IPO)를 위한 투자자 설명서에서 황은 핀둬둬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그의 도발적인 설명은 투자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게임회사를 운영했던 황은 핀둬둬 ‘우리 카지노’가 재미있는 기능을 가진‘게임화된 쇼핑몰’이 되길 바랐다. 게임이 우리 카지노의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은 쇼핑방식도 게임과 유사하게 만들었다. 우리 카지노에서 쇼핑을 하면 주문내역에 따른 보상과 함께 다른 사용자를 우리 카지노로 초대하게 만드는 게임을 할 수 있다. 구매자를 유입시킨 이용자는 현금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많이(多多) 끌어모으다(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핀둬둬 사명처럼 공유를 유도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이러한 접근 방식으로 핀둬둬는 구매자와 판매자를 모으고, 광고를 유치하는 사업 모델을 마련했다.

황은 무엇보다 핀둬둬가 부자가 아닌 서민들을 위한 쇼핑몰이 되길 바랐다. 시장 잠재력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핀둬둬가 사업을 시작한 2015년 기준 중국 하위 계층 전자 상거래 지출이 처음으로 베이징과 같은 1, 2선 도시를 앞질렀다.

판매자 역시 소상공인 발굴에 집중했다. 알리바바가 대형 공급상을 육성한 것과 반대로 소규모 업체나 농가를 우리 카지노에 입점하는 방식으로 중간 유통 과정을 없애고 가격을 낮췄다. 거래 수수료도 거의 받지 않고 광고비로 수익을 올렸다.

결국 핀둬둬의 전자상거래 앱인 ‘우리 카지노’는 중국 내에서 큰 성공을 거뒀고 미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중국 인마데이터리서치에 따르면 핀둬둬의 중국내 시장 점유율은 2019년 7.2%에서 2023년 기준 19%로 올랐다. 2022년 미국에 진출한 우리 카지노 역시 2022년 기준 미국 내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이 17%까지 상승했다. 우리 카지노는 현재 북미, 유럽,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를 포함한 전 세계 90개국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우리 카지노는 한국 시장에도 직접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황은 자신의 무패신화를 이뤄낸 비결을 ‘일하는 방식의 변화’로 꼽는다. 그는 텐센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나는 세상을 바꾸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일을 단계에 맞춰 제대로 하고 싶을 뿐이다”고 말했다. 또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뭔가 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 최고 부자’지만 허례허식없는 은둔형 재벌

우리 카지노이 걸어온 길
우리 카지노이 걸어온 길

구글 재직 시절, 돈이 하루아침에 사람들을 어떻게 바꾸는지 깨달았다. 불교에서는 많은 돈을 얻을 수 있는 건 그에 상응하는 덕이 있기 때문이다. 덕이 충분하지 않으면 재산이 많은 게 꼭 좋은 일은 아니다.

우리 카지노이 과거 작성한 ‘메디엄’ 블로그 글 中

우리 카지노은 2020년 7월 핀둬둬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내려왔다. 2021년에는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도 물러났지만,여전히 최대 주주로 26.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우리 카지노가 미국에서 초대박이 나면서 그의 재산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황은 지난해 기준 중국 1위 부자이자, 전세계에서 23번째로 돈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등 다른 테크기업 경영자와 달리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생활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 없는 ‘은둔형 재벌’이다. 메디업, 위챗 플랫폼에 남긴 블로그 글을 통해 그의 과거와 생각을 알 뿐이다.

중국 최고부자지만 황이 돈에 집착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절에 다닌 경험을 적으며 돈에 대한 생각을 밝힌 바 있다.황은 “구글 재직 시절, 돈이 하루아침에 사람들을 어떻게 바꾸는지 깨달았다”“일부 직원은 돈이 너무 많아 일할 의욕을 잃었고, 다른 일들을 찾으면서 소중한 세월을 낭비하게 된 상황이 됐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는 “불교에서는 많은 돈을 얻을 수 있는 건 그에 상응하는 덕이 있기 때문”이라며 “덕이 충분하지 않으면 재산이 많은 게 꼭 좋은 일은 아니다”고 했다.

실제 그는 현금 가치 1000억위안(약 19조9000억원)에 달하는 핀둬둬 지분 3.37%를 사회에 환원하기도 했다.

그가 회사를 떠난 뒤에도 우리 카지노는 급성장했지만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새로운 위기를 맞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리 카지노, 쉬인 등 중국의 저가 공략 플랫폼을 규제하기 위해 800달러 미만 소액 소포에 관세를 면해주는 ‘최소 기준 면제’ 규정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미 상무부가 완벽한 관세 징수 시스템을 갖출 때까지는 중국에 대한 최소 기준 면제를 유지하기로 한 상태다.

우리 카지노도 미국의 관세 정책에 대응해 중국 내 물류 운영 방식을 크게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블룸그통신에 따르면 우리 카지노는 중국에서 직접 업체들이 배송하는 방식이 아닌, 업체들이 미국 내 창고로 대량 배송해 관세를 피하는 체제로 전환을 모색 중이다.

우리 카지노가 미국의 규제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여전히 지분을 가지고 있는 황이 어떤 행보를 이어갈 지 주목된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정면에 나서기보다는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면서 생명공학연구 등 다른 일에 매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