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 슈퍼챗 후원 1~9위 차지한 보수 온라인 슬롯

“진실 말 안 해줘” TV·신문 끊었다는 尹 지지자

국힘 의원들에게 “언론 편향, 온라인 슬롯 보라” 독려한 尹

취재부터 뉴스까지, 그 사이(메타·μετά) 행간을 다시 씁니다.

지난 15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경찰 버스에서 내리는 관계자들의 모습을 온라인 슬롯들이 생중계 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지난 15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경찰 버스에서 내리는 관계자들의 모습을 온라인 슬롯들이 생중계 하고 있다. 박지영 기자.

[헤럴드경제=박지영·김도윤 기자] “공수처 해체! 탄핵 무효!”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되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이동한 이후 보수유튜버 A씨 또한 공수처 앞으로 이동해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했다. A씨가 온라인 슬롯 라이브로 이 과정을 생중계하면서 구호를 외칠때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1만원, 3만원, 5만원씩 슈퍼챗을 쐈다. 라이브 화면에는 A씨의 계좌번호가 띄워져 있었다. 방송 말미 A씨는 “최선을 다해서 알리도록 하겠다”며 “지원해주신 분들 감사하고 앞으로도 많이 도와달라”며 방송을 끝맺었다. A씨의 어제(15일) 수입은 35만원에 달했다.

지난 2일부터 탄핵 찬성·반대 집회 참여자들이 윤 대통령 관저가 있는 서울 한남동으로 집결하면서, 각 진영 온라인 슬롯들의 생중계 경쟁도 가열됐다. 온라인 슬롯 구독자들은 이에 환호하면서 슈퍼챗을 쏘거나 계좌 후원을 하는 등 온라인 슬롯들에게는 대목이나 다름없는 한 주였다.

보수 온라인 슬롯들은 부정선거 음모론과 불법 체포영장이라고 주장하는 영상들을 재생산했고, 진보 온라인 슬롯들은 윤 대통령 체포 과정을 생중계하면서 슈퍼챗을 받았다. 특히 상대 진영을 도발하면 할수록 슈퍼챗이 쏟아졌다. 한남동에선 사람들의 분노를 의도적으로 유발해 돈을 버는 ‘분노경제’의 한 단면이 목격됐을 뿐 아니라 기존 언론에 대한 신뢰 실종도 번지고 있었다.

보수온라인 슬롯인 고성국TV가 서울 한남동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응원차 어묵 버스를 보내기도 했다. 박지영 기자.
보수온라인 슬롯인 고성국TV가 서울 한남동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응원차 어묵 버스를 보내기도 했다. 박지영 기자.

약 열흘이 넘게 지속된 한남동 앞 집회에서는 휴대폰을 들고 온라인 슬롯 라이브로 생중계를 하는 유튜버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각 집회 참가자들은 잠깐 쉬며 라면을 먹을 때나 삼삼오오 모여 함께 온라인 슬롯를 시청하면서 부정선거나 불법 체포영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보수 온라인 슬롯인 ‘그라운드 씨’ 채널을 즐겨본다는 한 고등학생은 “지상파 뉴스랑 그라운드 씨를 함께 보는데, 뉴스에서 안 다룬 내용을 이 채널에서 다루는 내용이 많다”며 “팩트에 근거한 내용을 전달하니까 (언론보다) 더 믿음이 간다”고 설명했다.

보수 온라인 슬롯 ‘고성국TV’를 즐겨본다는 탄핵 반대 집회 참여자인 60대 고모 씨는 다른 집회 참여자들과 모여 더불어민주당의 ‘카톡 검열’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최근 민주당이 보수 유튜버를 고발했을 뿐 아니라 아니라 ‘카카오톡 등을 통해 가짜 뉴스를 퍼 나르는 일반인도 내런 선동으로 고발할 것’이라는 방침을 세운 바 있다.

고씨는 “이거야 말로 국민 카톡을 일일이 들여다본다는 검열이고 자유를 침해하는 내란 아니냐”며 “이렇게 가다간 공산 국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씨는 “언론은 우리를 부정적으로만 다루지 이런 얘기들을 다루지 않으니 믿음이 안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신의 한수’ 채널을 구독하는 손모(56) 씨는 “처음에는 대통령이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생각이 다르다. 공수처의 불법 행위, 민주당의 부정선거 개입을 언론은 말하지 않는다. 진실이 뭔지 알고 나니 화가 치밀어 올라서 뉴스랑 신문을 다 끊고 온라인 슬롯만 본다”고 설명했다. 14일 보수 단체 집회에선 “우리 상황을 제대로 보도하는 언론이 어디있냐”며 언론사 명을 언급하며 “꺼져라”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탄핵 찬성·반대 집회에 참여한 온라인 슬롯들끼리 욕설을 주고 받는 등의 험악한 상황도 여러 번 목격됐다. 박지영 기자.
탄핵 찬성·반대 집회에 참여한 온라인 슬롯들끼리 욕설을 주고 받는 등의 험악한 상황도 여러 번 목격됐다. 박지영 기자.

온라인 슬롯들끼리는 마찰도 빚어졌는데, 이럴 때마다 슈퍼챗이 터지기도 했다. 태극기를 가방에 꽂은 온라인 슬롯가 보수 단체 집회에서 약 200m 가량 떨어진 탄핵 찬성 집회 현장을 찍자 “윤석열 쫄보XX”라는 욕설이 날아왔다. 이 온라인 슬롯가 “빨갱이는 북한으로”라고 응수하면서 상황이 험악해지자 주변에 있던 경찰관이 제지했다. 경찰과 진보 집회 참여자를 향해서는 “중국인 경찰이 숨어있는거 아니냐, (진보 집회에는) 중국인 참가자도 있다”며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주장도 외쳤다. 반대 상황도 빈번했다. 진보 성향 온라인 슬롯가 탄핵 반대 측 지지자에게 “XXX에 폭탄 맞아야 한다”고 도발하자 쌍욕이 날아왔다.

진보 집회에 참여한 유튜버 B씨는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을 보려고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다. 동시접속자는 3200명 정도”라며 “제일 많았을 때는 약 20만명이 관저 앞을 점령했던 4일이었고, 그때는 2만4000명이 동시에 시청했다”고 말했다. 양 측 지지자간 싸움이 붙을 때마다 온라인 슬롯 시청자들은 슈퍼챗을 쏴 후원으로 응원했다.

지난 일주일간 슈퍼챗 후원 7위에 오른 보수 온라인 슬롯 김상진TV(약 1000만원, 왼쪽)와 2위에 오른 진보 온라인 슬롯 고양이뉴스(약 4300만원, 오른쪽)가 지난 일주일간 업로드한 온라인 슬롯 동영상 목록. [온라인 슬롯 캡처]
지난 일주일간 슈퍼챗 후원 7위에 오른 보수 온라인 슬롯 김상진TV(약 1000만원, 왼쪽)와 2위에 오른 진보 온라인 슬롯 고양이뉴스(약 4300만원, 오른쪽)가 지난 일주일간 업로드한 온라인 슬롯 동영상 목록. [온라인 슬롯 캡처]

온라인 슬롯 통계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지난 일주일(6~12일) 간 슈퍼챗 후원을 가장 많이 받은 우리나라 유튜버 1~9위는 2위를 제외하고 모두 보수 정치 유튜버들의 차지였다. 슈퍼챗 후원 1위는 ‘신의한수’(약 4900만원), 3위는 ‘그라운드씨’(약 2500만원), 4위는 ‘홍철기TV’(약 2300만원)였다. 2위는 한남동 윤 대통령 관저 실시간 라이브 영상을 올린 진보 성향의 온라인 슬롯 채널 ‘고양이 뉴스’(약 4300만원)였다.

어제 윤석열 대통령은 체포 직전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요즘 2030세대가 관저 앞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하고 있는데 온라인 슬롯를 통해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다”며 “연설 내용이 매우 논리적이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친중 세력에 대한 반감이 담겨 있어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요즘 레거시 미디어는 너무 편향돼 있기 때문에 온라인 슬롯에서 잘 정리된 정보를 보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이러한 온라인 슬롯의 득세는 보수 뿐만 아니라 진보에서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온라인 슬롯인 김어준 씨의 ‘한동훈 암살조’ 주장이 상당수 허구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참모들이 작성한 것과 관련해 “첫 보고서가 유출돼 김어준 씨가 허황된 사실, 거짓말을 한 것처럼 돼서 제가 미안하다”며 사과 하기도 했다. 이후 박 의원은 첫 보고서에서 ‘신빙성 낮음’이라고 평가한 부분을 모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으로 바꿨다.

전문가들 “정보≠사실, 온라인 슬롯 이념과 결합

정보가 사실처럼 유통…리터러시 능력 키워야”

전문가들 사이에선 언론에 대한 신뢰 약화와 분노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진영을 갈라 치거나 특정 집단에 대한 분노를 유발해 더 자극적인, 극단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그것으로 자신의 경제이익을 도모하는 일종의 ‘분노 경제’의 모습이 보인다”며 “이윤추구가 목적인 온라인 슬롯들이 진실 여부에 상관없이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나르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정보·사실·지식으로 분류한다면, 레거시 미디어는 크로스체크도 하고 게이트키핑도 하며 정보를 사실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데 온라인 슬롯들은 정보를 사실처럼 이야기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검증되지 않은 정보는 온라인 슬롯들의 이념과 결합되면서 그럴듯하게 보이고, 시청자들은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확증편향을 증가시키는 알고리즘 문제도 지적된다. 미국 뉴욕타임즈(NYT)는 ‘공포와 음모론이 한국의 정치적 위기를 부추긴 방식’ 제하의 기사에서 최근 태극기 부대 집회를 보도하며 “온라인 슬롯 알고리즘의 정보 버블(information bubble)이 국가를 분열시키는데 작용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짚었다.

최 교수는 “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에 따르면 아무리 지적으로 우수한 사람이라도 군중 속에서는 노래를 부르고 슬로건을 외치면서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잇는지 망각하게 되고 집단이 외치는 진실만을 진실로 믿게 된다”며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개인의 리터러시 능력이 중요해졌으며, 정치인들의 언어사용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