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사이트과 KBS교향악단의 올 첫 만남

격조높게 부활한 말러 2번 교향곡 슬롯 사이트

정명훈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의 슬롯 사이트 [KBS교향악단 제공]
정명훈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의 슬롯 사이트 [KBS교향악단 제공]

[헤럴드경제=슬롯 사이트 기자] “나 살기 위해 죽으리라!(Sterben werd‘ ich, um zu leben!)”

‘광야의 팡파르’가 아득히 들려오자, 스네어 드럼이 진격하고 금관 악기들의 필사적 분투가 시작된다. 고통스럽도록 지난한 굉음들의 폭격이다. 거친 소리들은 세상의 종말이 당도할 것 같은 불길함을 뱉어낸다. 난폭했던 금관이 잠시 숨을 고르면, 최후의 날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솟구친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을 만큼 내몰릴 때, 고요 속에서 서서히 인성(人聲)이 들려온다. 모든 악기가 숨을 죽인 채,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로만 만들어가는 ‘슬롯 사이트의 노래’는 그 어떤 찬가보다 성스럽다. 그제야 모든 환란이 걷히고, 한 줄기 빛이 도래한다. 이것이 바로 ‘슬롯 사이트의 서막’이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말러가 다시 왔다. 지난 2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KBS교향악단의 811회 정기연주회에서다. 2022년부터 KBS교향악단의 계관 지휘자로 함께 해온 정명훈과 악단의 2025년 첫 연주였다. 올해의 첫 번째 공연이 말러 교향곡 2번 슬롯 사이트이라는 점은 여러 의미를 덧대기에도 적합했다. 정 지휘자는 지난해부터 KBS교향악단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오르내렸고, 올해 무려 7번의 연주를 함께 하기로 했다. 이러한 이유로 슬롯 사이트은 한 해의 시작이자, KBS교향악단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의의까지 더할 수 있었다.

공연은 일찌감치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의 줄임말, 공연 마니아들의 신조어)을 불러왔다. 슬롯 사이트 말러는 한국의 무수한 ‘말러리안’을 기다리게 한 공연이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시절 한국 클래식 음악사에 이정표를 세운 ‘말러 사이클’ 이후, 한국 악단과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슬롯 사이트 말러를 마주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KBS교향악단과 함께 하는 말러 연주는 그들의 ‘첫 번째 말러’라는 점에서 더 특별했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의 슬롯 사이트 공연 중 소프라노 황수미 [KBS교향악단 제공]
정명훈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의 슬롯 사이트 공연 중 소프라노 황수미 [KBS교향악단 제공]

말러의 거대한 우주…장례식으로 시작슬롯 사이트 삶과 죽음의 이치

말러의 교향곡은 거대한 우주이자 끝 모를 심해다. 그 안엔 이름 모를 별들이 반짝이고, 정체를 알 길 없는 미지의 생명체가 수많은 소리로 존재한다. 스스로 “교향곡을 쓴다는 것은 동원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해 하나의 세계를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던 만큼 2번 슬롯 사이트에서도 ‘소리의 총체’로서의 음악을 온전히 만나게 된다. 후기 낭만주의의 대편성곡인 슬롯 사이트은 4관 편성으로 10개의 호른과 트럼펫, 심벌즈를 비롯해 트라이앵글, 탐탐 등 독특한 타악기가 쓰인다. 말러의 기존 교향곡과의 차이라면, 2번은 장장 6년(1888~1894)에 걸쳐 작곡됐다는 점이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 멘델스존의 찬가 교향곡(2번), 리스트의 파우스트 교향곡 이후 합창이 본격적으로 들어간 곡이기도 하다.

슬롯 사이트은 작곡가 말러의 죽음에 대한 인식과 철학이 곳곳에 묻어난 곡이다. 작곡 배경부터 죽음이 개입됐다. 1888년 1월 라이프치히 오페라의 지휘자로 활동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버의 미완성 오페라 ‘세 사람의 핀토’ 공연을 마치고 엄청난 호평 세례와 함께 잠든 날이었다. 그는 꽃으로 둘러싸인 침대에 죽은 채로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꿈을 꾸게 됐다. 말러 자신의 장례식 꿈이었다. 슬롯 사이트의 1악장은 이 꿈을 통해 태어났다. 당시 쓴 곡은 ‘죽음의 제전’, 즉 장례식이라고 불렀다.

문제의 ‘장례식’은 슬롯 사이트의 1악장에서 만나게 된다. 정명훈과 KBS교향악단의 1악장은 절도 있는 출발로 문을 열었다. 공연 전 어수선했던 객석의 눈과 귀를 완전히 집중케 하는 시작이었다. ‘’빠르고 장엄하게(알레그로 마에스토소)’ 진입해야할 1악장은 ‘바그너 전문가’인 말러의 ‘바그너 오마주’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말러는 생전 510여번이나 바그너를 지휘했다.

1악장에서 긴박하고 장엄한 트레몰로의 제1주제가 연주되면 곧이어 듬직한 저음현이 고개를 내민다. 바그너의 ‘발퀴레’ 1막 도입부를 떠올리게 하는 슬롯 사이트의 서두는 정명훈과 만나 완전히 다른 색채를 그려갔다. 천둥처럼 부서지는 트레몰로라기 보다, 우아한 엄숙미가 더해졌다. C단조의 제1주제 뒤엔 E장조로 전환, 서정적인 제2주제로 온화하게 상승하는 현의 선율을 만들었다. 1악장에선 중저음의 현악기들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선율이 격조있는 순간순간을 만들었다. 활의 방향과 속도, 각도가 잘 맞아떨어졌으나, 소리의 밀도와 앙상블은 다소 왜소하고 헐거웠다. 목관군의 부드러운 선율은 1악장을 살려준 요소였다. 정명훈은 절제되고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단원들을 이끌며 모든 악기가 소외되지 않도록 존재감을 끌어냈다. 복잡다단하고 격렬한 조성의 변화, 난데없이 등장하는 금관악기를 통한 급격한 곡의 전환은 예고없이 찾아오는 우리 삶의 마지막 순간과도 다르지 않았다. 극적인 변화들이 오페라와 같은 긴장감을 만들며 인간의 의지로는 거스를 수 없는 삶과 죽음의 이치를 마주하게 했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의 슬롯 사이트 [KBS교향악단 제공]
정명훈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의 슬롯 사이트 [KBS교향악단 제공]

아름다운 선율의 ‘슬롯 사이트하는 교향악’, 거친 불협으로 표현한 역설적 삶

말러는 2악장을 ‘죽은 영웅의 행복한 과거 회상’이라고 했다. 가곡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2악장은 보통 ‘노래하는 교향곡’이라고도 불린다. 아름다운 2악장은 슬롯 사이트 색깔과 감성이 더 많이 묻어났다.

‘산책하듯 보통 빠르기로(안단테 모데라토)’ 노래하는 말러의 낭만적 선율을 느릿하게 이어갔다. 선명한 소리를 만나 생기가 더해지면서 무게 잡지 않은 가벼운 춤곡의 느낌이 살아났다. 하지만 소리의 깊이는 달랐다. 그 안엔 진중함이 담겨 삶과 죽음을 돌아보게 한다. 정 지휘자는 슬롯 사이트을 통해 말러가 표현하고자 했던 소리 하나하나가 들려오도록 조율했다.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현악기 위로 피콜로가 지저귀고 하프가 사랑스러운 소리를 더하면 우리 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만나게 된다.

삶을 향한 찬미를 그린 2악장을 지나 3악장에 도달하면 말러의 보헤미아 정서가 물씬 풍긴다. 이 악장은 말러의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가곡집 중 ‘물고기에 설교하는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의 선율과 로트 교향곡 마장조 3악장 선율을 바탕으로 했다. 귀를 자극하는 무수히 많은 불협화음이 어디에도 숨지 않고 속속 존재감을 드러낸다. 2악장과 대구를 이루는 3악장은 불가해한 소리의 향연이다. 거대한 팀파니 소리로 시작해 등장하는 8분의 3박자의 리듬은 반복적이면서도 쳇바퀴 도는 듯한 삶을 그리며 관객의 귀를 괴롭힌다. 요란하게 터져 나오는 금관, 쉴새 없이 소리치는 선명한 악기 소리는 슬롯 사이트 기지 가득한 해석이었다. 앞서 두 악장에서 찾아온 앙상블의 아쉬움은 3악장에선 해소됐다. 거칠게 쏟아지는 음의 향연이 도리어 말러가 그리고자 했던 삶의 역설을 온전히 드러냈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의 슬롯 사이트 공연 메조 소프라노 이단비 [KBS교향악단 제공]
정명훈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의 슬롯 사이트 공연 메조 소프라노 이단비 [KBS교향악단 제공]

‘미괄식’으로 써내려간 감정의 상승 곡선…인성으로 폭발

정명훈의 슬롯 사이트은 글로 치면 미괄식이었다. 1악장부터 한 겹 한 겹 쌓아온 감정과 스토리의 레이어는 점차 상승곡선을 그리더니, 4악장에서 본격적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귀를 괴롭히는 화음들을 단숨에 씻어내듯 ‘매우 장엄하게’ 연주하도록 지시한 4악장은 시작부터 장엄했다. 견고한 아름다움을 지닌 선율이 혼란했던 직전 악장의 고통을 잊게 한다. 성악이 등장하는 4악장은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서 가져온 텍스트로 가사를 입혔다. ‘근원의 빛’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악장에선 마치 신의 소리를 지상으로 보낸듯 천상의 선율이 영혼을 어루만진다. 메조 소프라노 이단비의 깊이 있고 진중한 음성은 현악, 금관과 어우러져 충만한 의지를 만들었다. 정명훈은 4악장을 앞의 세 악장과 다음에 이어질 5악장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삼아 마지막 악장으로 향해 갔다.

30분 가량 이어지는 최종 악장은 소리와 메시지, 정서적 감동이 조화를 이룬 음악의 경지를 들려줬다. 말러 교향곡 특유의 도입부가 슬롯 사이트에서도 등장한다. 5악장은 숨통을 조일 만큼 휘몰아치는 1악장의 제2전개부에서 나온 선율(‘영혼의 동기’)로 시작한다. 5악장에서 중요한 선율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힌트를 주는 대목이다. ‘스케르초의 템포로’라고 지시한 이 악장에선 호른과 트롬본이 ‘진노의 날’ 선율을 반복하며 혼란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그린다. 삶의 장마다 써내려가는 희로애락의 여정은 길고 지난하다. 저마다 마음속에 파랑새 한 마리를 품지만, 한 번도 날아보지 못했고 그러다 나는 법도 잊은 어떤 삶들을 그린다. 아무리 투쟁해도 이겨보지 못한 삶이었고, 욕망해도 가지지 못한 삶에서 존엄을 지키려 했던 이들의 혹독한 여정을 담은 음악이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의 슬롯 사이트 [KBS교향악단 제공]
정명훈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의 슬롯 사이트 [KBS교향악단 제공]

거장 지휘자는 지난한 고통을 지지부진하게 끌지 않고 적당한 긴장감과 쫀쫀한 호흡으로 감정을 끌어올렸다. 쥐락펴락 매만진 소리 안에 켜켜이 쌓아간 감정은 총천연색으로 내려앉았다. 금관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서서히 등장하는 합창은 거룩한 부활의 함성이었다. 초저음부터 쌓아올린 아카펠라 합창은 클롭슈토크의 시 슬롯 사이트에서 약간의 변화를 준 가사를 노래한다. ‘부활하라’라고 읊조리듯 성스럽게 울려퍼지는 인성의 하모니는 단연 이날 공연의 ‘최고의 1분’이었다. ‘영적인 지휘자’라는 수사를 안고 다니는 정명훈이 해석하는 슬롯 사이트과 삶과 죽음에 대한 그의 인식이 고스란히 투영된 대목이기도 했다. 소프라노와 메조 소프라노의 2중창, 합창과 오르간이 더해진 부활의 노래는 다시 한 번 찾아올 생을 향한 염원이었다. 처절한 고통일지라도 끝끝내 살아내겠다는 인간의지의 표상이었다.

이날 정명훈은 타고난 ‘조련사’였다. 한 음, 한 음을 쌓아가고, 다채로운 악기들이 조화를 이룰 때마다 음량을 조절하고 조율하며 감정의 레이어를 덧댔다. 몇몇 객원(송윤신 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 악장, 조성호 도쿄필하모닉 수석(클라리넷), 미샤 그로일 전 취리히 톤할레 악장(호른) 등)을 포함해 KBS교향악단 역시 정명훈의 지휘와 해석을 집중력 있게 따라갔다. 그의 슬롯 사이트은 고난 속에서도 격조를 잃지 않았다. 숭고한 깊이를 품은 장엄한 위로의 노래였다. 마지막 함성과 함께 찾아온 정서적 충만함은 약간의 실수와 아쉬움도 하나의 맥락으로 엮었다. 일부 앙상블에서의 어긋남은 도리어 ‘영원한 미완성’인 우리 삶의 단면처럼 다가왔다. 앙코르로 5악장 중 피날레가 다시 울리자 마침표를 찍었던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들며 객석으로 가닿았다. ‘나의 시대는 올 것’이라는 했던 말러가 온전히 부활한 날이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