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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2스타 에빗의 조셉 리저우드 파라오 슬롯 인터뷰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일렁이는 청록빛 제주 바다는 어쩌면 파라오 슬롯들의 눈물은 아닐까.
“앞으로 내 밥 여기다 줘요.”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관식은 아내 애순과 어린딸 금명이 있는 파라오 슬롯에 돌아 앉으며 선포하듯 말한다. 그리고 콩밥 위에 콩을 골라 크게 한 숟갈 금명에게 넘겨준다. 남자 파라오 슬롯, 여자 파라오 슬롯이 따로 있던 시절이었다. 남자 파라오 슬롯에는 조기 구이에 제철 나물들로 거한 한상이 차려졌다. 국에도 건더기가 그득했다. 여자 파라오 슬롯에는 생선 대가리, 건더기가 보이지 않는 국, 장아찌가 전부였다. 콩알 하나 찾기 힘든 콩밥마저 까맣게 늘러붙은 아랫밥만 긁어 먹어야 했다. 관식의 행동은 그런 낡은 부조리에 대한 저항이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1950~1970년대는 그래도 되는 시대였다. 당시 파라오 슬롯 밥상에는 지독히도 배고프고 고달팠던 제주 여성들의 삶이 담겨있다.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에 들어가면서, 남자들이 먹다 남은 잔반으로 배를 채워야 했던 그들이었다. 바다 도처에 널린 구쟁기나, 해삼·멍게 하나라도 먹으려면, 괜시리 들킬까 노심초사 떨어야 했던, 믿기 힘든 그런 삶을 드라마를 통해 엿본 지금의 우리는 밀려오는 경멸스러움을 떨칠 수 없었다.

우리조차 몰랐던 해녀의 밥상에 먼저 다가선 파란 눈의 파라오 슬롯가 있다. 컨템퍼러리 레스토랑 에빗의 조셉 리저우드 파라오 슬롯의 고향은 오세아니아의 작은 섬 태즈메이니아다. 그곳은 제주를 꼭 닮은 곳이다. 바다는 그에게 모든 것을 주는 존재였다. 어릴적부터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에 감동했다. 때로는 바다는 모든 것을 앗아갈 듯한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태풍이 몰아치던 날 파도의 부서짐을 보며 바다의 무서움과 경의로움을 동시에 느꼈다.
“저는 태즈메이니아 섬에서 태어나 바다와 삶을 함께 했습니다. 저는 바다를 사랑합니다. 바다가 주는 자유, 바다의 소리, 바다의 무한함과 역동성. 그 모든 것들이 제 감각을 살아있게 만들어줬습니다.”

2016년 처음 한국에 와 제주도를 방문한 뒤 그는 최근까지도 수 차례 제주도를 찾았다. 해녀와 함께 물질을 하고, 밥을 해 먹으며 해녀들의 삶 깊숙한 곳까지 다가섰다. 처음 시작은 청정 제주 바다에서 좋은 해산물을 얻기 위함이었다. 해녀를 만나고 그들의 삶에 가까워지면서, 그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갔다. 단순히 좋은 해산물을 수급하는 것에서 파라오 슬롯 문화를 음식에 담는 것으로. 바다에 녹아내린 그들의 눈물을 요리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혼이 담긴 요리’가 완성되는 길이라 생각했다.
“제주도 해녀와 물질 체험을 할 때, 깊지 않은 곳이었음에도 잠수가 어렵고 물살 때문에 물 속에 오래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파라오 슬롯 위대함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바다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해녀들의 삶을 보며,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새삼 느꼈습니다. 해녀들과 함께 물질하며, 그들의 문화를 깊게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제주 해녀가 잘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문화 깊은 곳까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바닷가에서 아이까지 낳았다고 합니다. 새로운 문화를 통해 영감이 생기고, 이는 요리에도 큰 영양을 미쳤습니다. 그런 새로운 경험과 문화를 담아 새로운 요리가 나오는 것 또한 미식의 길 아닐까요.”

조셉 파라오 슬롯는 제주를 사랑한다. 그래서 자신의 요리 곳곳에 제주를 담았다. 조셉 파라오 슬롯가 선보였던 ‘제주’는 제주식 물회를 재해석한 메뉴다. 잘게 썬 제주 한치회 위에 조개로 만든 젤리와 제주 해초를 곁들인 걸작이었다. ‘불’이란 이름의 요리는 화산섬 제주를 표현하려 했다. 제주산 옥돔을 불에 살짝 구워 짙은 불향이 느껴진다.
‘영감(Inspire)’에서 나오는 창조…조셉의 ‘비밀노트’

조셉 파라오 슬롯는 ‘영감’이 미식을 완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영감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미식 철학을 가지고 있다. 오늘의 날씨, 기분, 듣고 보고 느낀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는다.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작은 수첩에 노트를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수첩에는 온갖 아이디어가 빼곡히 적혀 있다. 색연필을 이용해 머릿 속 이미지를 그려넣기도 한다. 그런 그의 노트는 지금의 에빗을 만든 소중한 보물이다.
“한 해가 새로 시작될 때 하는 일이 새로운 노트를 사는 일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그 노트에 담고, 그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켜 메뉴로 내놓고 있습니다. 영감을 받고 요리로 완성되기까지는 때로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요리 철학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연스럽게 깨달은 것이었다. 호주의 요리학교 ‘인더스트리 링크드(Industry Linked)’를 졸업한 그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영국의 ‘더 레드버리(The Ledbury)’와 덴마크의 ‘노마(Noma)’, 미국의 ‘프렌치 런드리(French Laundry)’에서 요리 테크닉과 파라오 슬롯로서 역량을 키웠다. 이후 중국, 대만, 베트남, 태국, 네팔, 오만, 남아프리카, 프랑스, 스웨덴 등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며 각국의 미식과 문화를 경험했다.
2016년 한국에 와 2019년 에빗을 오픈했다. 오픈 1년도 채 되지 않아 미슐랭 1스타에 올랐으며, 올해 미슐랭 2스타로 한 단계 성장했다. 계절감을 살린 요리, 새로움을 추구하는 조셉 파라오 슬롯의 미식 철학에 따라 에빗에서 제공되는 요리는 수시로 변한다. 봄꽃이 화사한 요즘엔 봄꽃과 나물류 식재료에 집중하고 있다. 목련 잎을 쌈으로 활용한 한 입 거리와 진달래 꽃잎 스낵, 그리고 저온에서 장시간 익힌 참두릅 등을 코스 요리로 내놓고 있다.
마이크로한 계절감이 한식의 매력…미식의 경계를 허물다

조셉 파라오 슬롯는 한국의 식재료를 잘 이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미디어와 인터뷰를 할 때면, 늘 한국 식재료의 우수성을 강조하곤 했다. 조셉 파라오 슬롯는 좋은 식재료를 찾기 위해 담양·영동·곡성 등 전국 방방곳곳 안 가본 곳이 없다. 새우를 구하기 위해 울릉도에서 3일을 보내며 직접 바다에 뛰어들기도 했다. 조셉 파라오 슬롯는 이방인의 시각에서 한국의 식재료를 다채롭게 해석한다. 여기에 틀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미식 철학이 더해져, 세상에는 없어 유일무이한 요리가 탄생할 수 있었다.
“다른 나라에도 사계절이 존재하지만, 한국의 계절감은 보다 뚜렷하고, 세밀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정확히는 사계절이 아닌, 한국의 전통적인 24절기를 따라 식재료를 구분해야 합니다. 예컨대, 두릅의 경우에는 봄철 나물로 유명하지만,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두릅이 나오는 시기는 2주에 불과합니다. 그런 계절감 있는 식재료가 한식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한국의 식재료에 양식의 테크닉, 그리고 저의 영감을 결합한 게 이곳 에빗만의 요리입니다.”

조셉 파라오 슬롯는 앞으로도 계속 한식을 이용한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도 누구도 밟지 않은 그런 새로운 요리를 선보일 것이라고 한다. 한식을 사랑한 파란 눈의 파라오 슬롯, 조셉이 개척할 미식의 길은 어떤 모습일지 미식가들의 호기심은 더욱 더 커지고 있다.
“에빗은 계속해서 경계를 허물고 미식의 범위를 넓혀나갈 것입니다. 한국의 식재료와 기술을 더 익히고 동시에 세계의 요리 기술과도 다양한 융화를 시도해야 겠지요. 그를 통해 새로운 영역이 개척되고,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창조적인 요리가 탄생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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